2011.01.16. 주일낮예배 "주여! 이 땅을 치료하소서"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076회 작성일 2011-12-09 22:53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1.1.16.주일낮예배 주여! 이 땅을 치료하소서 역대하 7 : 11-16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새해가 되었지만 지금 우리 마음은 참으로 무겁고 어둡습니다. 우리나라가 처한 현실이 너무나 어둡기 때문입니다. 남북간의 군사적 충돌에서 드러난 우리 국민의 안보의식과 정치 사회 경제 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나타나는 각종 불의와 부패, 그리고 음란과 폭력, 죄에 대한 불감증이 우리 마음을 더 무겁게 만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장 거룩하고 경건해야 할 교회, 진리 보루가 되어야 할 교회가 자정능력을 잃고 세상의 지탄과 비방거리가 되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들어온 이후 가장 큰 위기에 처한 시기가 아닌지 걱정이 됩니다. 또한 지난해 말 발생한 구제역으로 매몰된 가축이 이미 140만 마리를 넘어섰고, 축산업이 붕괴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조류 인플루엔자와 신종플루까지 가세하여 바이러스 피해가 날로 커져가고 있습니다. 자식처럼 아끼고 돌보며 키워온 가축을 내어주고 고통 받는 농민들과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방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희생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국가적 재앙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이런 것을 가리켜 총체적 난국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역사가 어두워지고 기울어지는 것은 그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의 죄 때문은 아닌가? 먼저 부름받은 성도들이 빛과 소금으로 살지 못했기 때문은 아닌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부패를 막고, 어두워진 세상에 빛의 사명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영향력있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믿는 사람이, 교회가 세상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이 바로 우리 믿음의 사람이, 우리 포도원교회 성도들이 소금과 빛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희망이 되고, 맛을 내고 빛을 비추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이런 국가적인 아픔과 재앙을 대하면서 우리 교회와 성도들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겠는가? 본문을 통해 그 해답을 얻고자 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만일 기근이나 병충해나 전염병과 같은 국가적인 재난과 위기가 나라를 휩쓸게 될 때 세 가지를 제시하신 말씀입니다. 첫째, 악한 길에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이 민족의 회복은 바로 회개에 있습니다. 사람은 죄 때문에 망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으므로 망하는 것입니다. 니느웨성은 그들의 죄가 하늘에까지 사무쳤으나 회개함으로 구원받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미스바에 모여 “우리가 하나님께 범죄했다”고 회개했을 때 그 나라가 건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민족의 제사장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현실은 어떻습니까? 교회가 사회 아픔에 대한 예언자적 사명을 잃어버렸습니다. 사회가 타락해도 이에 대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나라 백성들의 죄를 대신해서 회개해야 합니다. 본문 13절을 보면 “혹 내가 하늘을 닫고 비를 내리지 아니하거나 혹 메뚜기들에게 토산을 먹게 하거나 혹 전염병이 내 백성 가운데에 유행하게 할 때에”, 이렇게 국가적으로 어렵고 고통스러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악한 길에서 떠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악한 길이 뭡니까? 하나님을 거역하는 길입니다. 악한 길은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 의도와 맞지 않게 사는 길이요, 생명을 무시하는 길이며, 미움의 길입니다. 악한 길은 갈등의 길이요, 우상숭배의 길이며, 불신앙의 길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악한 길에서 떠나라... 악한 길에서 떠날 때 하나님은 황폐한 땅을 고쳐 주시고, 거칠고 메마른 우리 마음을 치료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악한 길에서 떠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뭡니까? 가장 먼저 이방신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우상을 제거해야 합니다. 우상숭배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애굽에 10가지 재앙은 하나님께서 우상숭배하는 민족을 멸망시킨 단적인 예가 되는 것입니다. 지혜롭고, 부귀영화를 누렸던 솔로몬 왕은 후궁들의 꼬임에 넘어가 우상을 숭배하게 되었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솔로몬 왕국이 분열되고 신하에게 나라를 뺏기는 비운을 겪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우상을 섬기면 망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잠시 떠나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한 달이 지나도 오지 않자 산 아래 백성들이 금붙이를 모아다가 금송아지 신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는 금송아지 앞에 제물을 갖다 쌓아놓으며 엎드려 절하고 춤을 추며 야단이 났습니다. 그때 40일 만에 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이 모습을 보고 크게 노하여 십계명 돌판을 던져버리고 맙니다. 그리고는 금송아지를 깨뜨려 고운 가루를 만들어서 그것을 물에 타 이스라엘 백성들로 마시게 합니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께 이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멸망에서 구원해달라고 눈물로 회개하며 기도합니다. 여러분, 여기서 금송아지 우상은 이 세상에서 최고로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의 상징입니다. 당시 사람들의 가치는 신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리석게도 보이는 신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있습니다. 금송아지를 자기 삶에서 최고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금송아지는 무엇입니까? 재물입니까? 자녀입니까? 명예, 아니면 지식입니까? 여러분, 이 땅에 회복의 은혜가 임하려면 불신앙적인 모든 요소를 제거해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을 깨뜨려야 합니다. 모세가 금송아지를 깨뜨려 가루를 만들어 먹인 것처럼 우리 우상을 제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 민족이 왜 이렇게 고통과 환난을 겪어야 합니까? 바로 여호와 하나님을 배반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제일주의 신앙보다 금송아지에 최고의 가치를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하나님을 불신하는 모든 불의와 패역과 죄악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게로 돌아오라 그러면 용서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요나서 1장에 보면, 요나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도망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나가 탄 배에 풍랑이 임합니다. 그때 요나는 배 밑창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선장이 요나에게 하는 말이 뭡니까? “자는 자여 어찜이냐?” 지금이 어느 땐데 자고 있느냐? 그 말입니다. 배가 파선하게 됐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누구 할 것 없이 이 폭풍을 이겨내기 위해 애를 씁니다. 그런데 요나만 배 밑창 선실에서 자고 있었던 겁니다. 선장이 그런 요나를 발견합니다. 죽느냐 사느냐 기로에서 그 모습을 본 선장은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불만스럽게 물은 것입니다. “지금이 어떤 땐데 자고 있습니까?” 이것을 다른 질문으로 바꾸면 “왜 당신은 지금 상황에 그렇게 관심이 없습니까? 이 일이 당신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느냐?” 그 말입니다. 여러분, 오늘 이 질문은 단순히 선장이 요나에게만 하는 질문은 아닙니다. 세상이 교회에게 하는 질문입니다. 세상이 저와 여러분에게 하는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라는 배가 폭풍을 만나서 깨져가고 있는데, 그 일이 우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가? 이 세상이라는 배가 전쟁과 기근이라는 풍랑을 맞아 요동치고 있는데... 지금 구제역으로 140만이 넘는 짐승이 생매장되고,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있는데 그것이 우리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가?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의 특징이 뭡니까? 내 일 외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는커녕, 언제부턴가 무관심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중국 초나라의 한 왕이 신하들에게, 다음 날 입궐할 때 포도주를 한 잔씩 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아침이 되어서 왕이 제각기 가지고 온 포도주를 모두 한 항아리에 부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맛을 봤습니다. 맛이 어땠을까요? 맹물 맛 밖에는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모두 나 하나쯤이야 괜찮겠지 하면서 맹물을 가지고 온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그 시대 제사장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불의를 꾸짖고, 회개를 외쳐야 합니다. 그런데 요나처럼 깊이 잠들어 버렸습니다. 그러는 동안 가정이 깨지고, 공동체가 분열되고, 나라가 무너지고, 교회가 힘을 잃는 것입니다. 중세 교회가 잠자고 있는 동안 세상은 암흑세계에 빠지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무관심의 잠에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사명의 잠에서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질 때 회복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오늘 이 시대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요나가 일어나 니느웨에 가서 복음을 외칠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니느웨에 회개운동이 일어났고, 회복의 복, 구원의 축복을 받지 않았습니까? 여러분, 신앙의 삶은 회복의 삶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곳마다 회복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가정이 회복되었습니다. 몸이 회복되고, 영적으로 회복되었습니다. 말씀을 통해 삶이 회복되었습니다. 병든 자들이 회복되어 일어났고 모든 환경들도 회복되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그 회복의 사역을 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오늘 이 시대 화해자이고 회복자들입니다. 그 일을 하려면 거기에 십자가를 지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이 나라와 민족이 하나님께로 돌이키도록 사명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여러분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고민이 있습니까? 가정적으로 사업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습니까? 국가적인 위기가 우리를 두렵게 합니까? 이와 같은 때에 문제를 해결하고 위기를 벗어나는 길이 뭡니까? 악한 길에서 떠나야 합니다. 우상을 제거하고, 사명의 잠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때 구원과 회복과 치료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스스로 낮추라는 것입니다. 이 나라와 민족의 회복은 우리가 낮아지는데 있습니다. 본문 14절에 보면, 국가적인 위기가 올 때 스스로 낮추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나 여러 상황을 볼 때 건국 이래로 편안한 날이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2011.01.30. 주일낮예배 "내가 담을 뛰어넘나이다" 11.12.09 다음글2011.01.09. 주일낮예배 "이전보다 더 영광스러운 교회"11.1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