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2010.02.07. 주일낮예배 "믿음은 능력이다"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436회 작성일 2011-12-0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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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2.7.주일낮예배

믿음은 능력이다 마가복음 9: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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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2주간 동안 21명 선교팀과 캐나다 미국 선교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은혜로운 일정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또한 기도와 헌신을 아끼지 않은 모든 성도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 가정과 인생가운데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저는 이번 캐나다와 미국에 가서 그들 문화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왜 선진국이 되고 선진문화를 이루며 살아가는가? 우리가 어떻게 선진문화를 만들어야 하는가? 바로 기독교문화가 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들은 인사문화가 참 발달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인사부터 합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하이~ 라고 인사합니다. 이것이 기독교문화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처음 보는 사람을 보고 인사하면 좀 이상하게 쳐다봅니다.

여러분, 돈만 벌어서 선진국이 아니라 선진국 삶의 자세 속에서 선진국이 같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사람을 만나면 꼭 안부를 묻고 칭찬을 합니다. 요즘 잘 지내냐고? 평안하냐고? 기쁨은 나누면 두 배로 커지고, 고통은 나누면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하잖습니까? 서로 존중하고 칭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는 칭찬에 인색한 경우가 많습니다. 사람은 배고픔과 배아픔이 있는데, 배고픈 것은 잘 견디는데 배아픈 것은 잘 견디지 못한다고 합니다. 왜냐면 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웃이 땅을 사면 배부터 아프다고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는 의식을 깨워야 합니다. 시기문화는 버리고, 신앙의 세상, 신앙의 문화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때 이 땅에도 아름답고 은혜로운 문화, 기독교문화, 선진문화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도전이 되는 것이 있었는데, 말씀 중간중간 소개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첫째날 캐나다에 도착해서 광림교회에서 찬양과 워십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으로 선교일정은 시작되었습니다. 주일은 캐나다 광림교회와 우리 이수근 목사가 담임하고 있는 포도원교회에서 주일예배를 인도했습니다. 그곳 미주지역에 우리 포도원교회를 세우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며, 영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교회가 되도록 뜨겁게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모든 일정이 다 귀하고 도전이 되고 은혜로웠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워싱턴 주 의사당을 방문한 것입니다. 우연히 의회 진행상황을 보게 되어, 우리는 방청석으로 갔습니다.

먼저 의전행사를 진행하고 있었고, 바로 이어서 의장은 시애틀 어느 교회 목사님을 소개했습니다. 그 목사님은 방청객과 의원들이 기립한 상태에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기도를 시작한다는 소리와 함께 의장, 의원, 방청객 어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눈을 감고 경건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곳에는 미식축구 선수들도 참여하고 있었는데, 어린 선수들이었지만 기도하는 모습이 얼마나 경건했는지 모릅니다.

그 목사님은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의원들에게 지혜를 주시고, 당신의 백성, 당신의 나라를 잘 다스릴 힘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자체가 감동이었고,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온 청교도들 저력을 바로 오늘의 미국 행정 중심부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미국의 힘, 미국의 저력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국 50개 주 가운데 한 주의 의회진행만을 본 것이지만, 미국이라는 나라가 그래도 아직 세계를 이끌고 가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의회 중심부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있는데 어찌 하나님께서 미국을 버리실 수 있겠습니까? 이것이 믿음의 힘이요 능력이구나 크게 깨닫고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에 집중하는 인생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변화산에 올라가십니다. 그 때 세 제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데리고 가시고, 아홉 제자는 산 아래 마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제자들이 머물러 있던 마을에 몰려들었습니다. 그 중에 귀신들린 아들을 데리고 온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주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제자들에게 귀신을 쫓아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나름대로 애를 써 봤지만, 결과는 실패였습니다. 귀신들이 꼼짝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아이에게 아무런 변화도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이때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은 "그 아이를 내게로 데려오라" 고 말씀하십니다. 고침받기를 원한다면, 해결받기를 원한다면, 예수님께 데려오라는 것입니다.

변화산 사건이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는 바가 뭡니까?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나를 만드신 창조주요, 이 세상과 모든 사람을 주관하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아버지는 불쌍한 아들 때문에 세상에 어느 것도 만족할 수 없었습니다. 세상에 이름 있는 의원들도, 심지어 예수님 제자들도 아들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했습니다. 이제 그 아버지는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예수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여러분, "할 수 있거든!" 이 말은 예수님을 모독하는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의 확신 없는 말속에서 믿음을 포기해 버린 자의 절망을 보셨습니다. 이 말은 적극적으로 매달려 도움을 구하는 태도가 아닙니다. 당신만을 믿는다고 하는, 주님을 신뢰하는 자세도 아니었습니다. 거의 포기한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한번 던져보는 도움 요청에 불과했습니다. "당신 제자들이 실패했는데 당신인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입니다. 믿을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 반응이 뭡니까? 그의 자신 없는 말에 주님은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호통을 치셨습니다. 그러자 그 아버지 고백이 당장 달라집니다.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여러분, 본문에 나오는 아버지는 우리의 믿음 없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러분, 살아있는 신앙인이 되기 원한다면, 오늘 내 곁에 계신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010년 더 큰 신앙의 사람이 되고 싶다면 크신 하나님을 크게 믿으시기 바랍니다. 보다 더 큰 인물이 되고 싶으시면, 보다 더 큰 꿈을 꾸고 보다 더 큰 믿음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하나님을 믿느냐에 따라 우리 인생 수준이 결정되고 축복의 분량이 결정됩니다.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능력입니다. 성도에게 사람의 한계를 극복하도록 주신 유일한 무기는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바로 믿음인 것입니다.

이 시간은 믿음이 지닌 구체적인 능력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2010년 믿음의 능력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믿음에는 기쁨과 승리의 능력이 있습니다.

 

믿음에는 기쁨과 승리의 능력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역경과 불행 중에도 기뻐하며 어떠한 악조건 속에서도 승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멸시와 천대를 받았고, 매 맞고 옥에 갇히기도 여러 번 했습니다. 돌에 맞아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항해 중에 배가 난파했지만 기적적으로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기뻐했고, 누구도 바울을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죽음의 순간까지도 믿음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그 이유가 뭐냐? 주님을 신뢰했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말할 수 없는 기쁨이 그를 웃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서론에서도 문화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또 한가지 우리와 미국 문화가 다른 것은, 죽은 사람을 대하는 문화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서양의 무덤과 동양의 무덤. 서양의 죽은 사람과 동양의 죽은 사람. 구원받고 죽은 사람과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사람 문화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7장에 보면 스데반의 순교 장면이 나옵니다. 그는 죽는 순간에 하나님 우편에 서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았습니다. 스데반 죽음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을 용서하고 하늘 보좌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믿는 자에게 죽음은 자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크리스찬의 죽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최후 승리한 성도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은 공동묘지가 시내 한복판에 있고, 교회 충성스러운 일꾼은 교회 앞마당에 묘지가 있습니다. 지난 해 수정교회를 갔는데 그 교회 앞에도 묘지가 있었고, 충성된 일꾼들 묘가 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2세기에 어느 순교자가 왕 앞에 끌려 왔습니다. 왕은 그에게 그리스도와 그리스도교를 버릴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그 순교자는 그 제의를 무시해버렸습니다.

왕은 "만약 그리스도를 버리지 않으면, 너를 추방하겠다" "너의 재산을 몰수하고 네 소유를 전부 빼앗겠다" 마침내는 "너를 죽여 버리겠다" 고 말합니다.

그러자 "나는 40년 전에 세상에 대해 죽었습니다. 내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습니다. 왕께서 손대실 수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우리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주님으로 인해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승리와 기쁨이 주어진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병상에서, 고난의 현장에서, 가난의 시달림에서도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면 얼마나 큰 복입니까? 그런 역경에 밟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믿음으로 밟고 일어서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물매로 골리앗을 죽였습니다. 이를 본 블레셋 사람들은 모두 도망치고 이스라엘이 승리합니다. 상식적으로 소년 다윗과 거인 골리앗 싸움은 골리앗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날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반대였습니다. 교만한 말과 최신 무기와 보호 장비를 앞세운 골리앗은 칼 한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이름을 앞세운 다윗은 아무런 보호장비도 없이, 오직 하나님에 대한 믿음만으로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진 것이 비록 보잘것없어도 하나님은 우리 믿음을 보시고 큰일을 행하십니다. 그래서 모든 승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믿고 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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