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2009.09.20. 주일낮예배 "조화로운 인생"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221회 작성일 2011-12-09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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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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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9.20.주일낮예배

조화로운 인생 누가복음 16 : 19-25

 

어떤 사람이 천재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수많은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그리기 힘든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한참을 생각하던 다빈치가 말했습니다. "해질 녘 노을을 그리기가 가장 힘들었습니다" 그는 다시 물었습니다. "왜 노을을 그리기가 그렇게 힘든가요?" 다빈치가 대답합니다. "저녁노을에는 빛과 어두움이 공존합니다. 빛만 있어도 그리기가 쉽고, 어두움만 있어도 그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빛과 어둠의 조화를 그린다는 것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잘 그리기만 하면 걸작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조화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조화를 이루는 일에 성공하면 걸작 인생이 된다고 하는 거, 적당하게 조화를 이룬 몸을 보세요. 보기도 좋을 뿐 아니라 건강미가 있고 힘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균형이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도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신앙이 균형이 잡히고 건강하고 능력을 발휘하는 신앙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조화로운 인생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본문에 보면 두 사람이 나옵니다. 한 사람은 부자로, 19절은 그에 대해 이렇게 소개합니다.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그리고 이어서 20절로 21절에 보면 또 한 사람 나사로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이 두 사람이 평행적인 인생을 살다가 어느 날 모두 죽었습니다. 그런데 죽고 난 후 하늘나라에서는 이 땅의 삶과는 전혀 다른, 주객이 전도된 모습으로 살게 됩니다. 집 앞에서 문전걸식하던 나사로는 하나님 품에서 행복하게 있는가 하면, 이 땅에서 떵떵대며 살았던 부자는 나사로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으로 나옵니다.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목이 타니 나를 좀 도와 달라" 이렇게 비참하게 몸부림치는 부자 모습이 본문이 주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면 부자는 왜 이렇게 비참한 신세가 되어진 것인가? 그 이유는 살아 있을 때 조화가 깨졌기 때문입니다. 조화가 깨졌다는 것은 균형을 잃은 인생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결론이 비참하고 불행한 인생이 된 것입니다.

여러분, 이 시간 조화로운 인생을 소원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자와 같이 어리석은 인생이 아니라 균형잡힌 인생, 조화로운 인생이 되도록 기도하며 결단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신앙인은 어떤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하겠는가?

 

첫째, 영혼과 육체가 조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있는 인생이 되려고 하면 영혼과 육체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부자는 육체적으로 풍성하고 돈도 많았습니다. 그는 자색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살았다고 했습니다. 자색옷은 당시 왕이나 귀족이 입는 옷을 말합니다. 고운 베옷은 같은 무게의 금보다 더 비싼 옷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호화로이 즐기며 지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날마다 잔치를 벌였다는 말입니다. 얼마나 풍요롭고 행복한 인생으로 보여집니까? 육체적으로는 부족함이 없는 인생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23절에 보면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줄 모르고 살았던 부자가 이제는 고통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뭡니까? 영적으로 볼 때 그는 죽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인생과 삶에는 예수님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조화된 삶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린 삶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을 가리켜서 반쪽 인생, 조화가 깨진 인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삭개오를 보세요. 그는 잘 먹어서 살이 찌고 얼굴에 기름기가 흐르는 부자였습니다. 돈도 많은 세리장입니다. 외형적으로 보면 모든 것을 갖춘 사람입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조화가 깨진 사람입니다. 왜냐면 육체적으로 보면 출세한 것 같지만 그의 영혼에는 믿음이라고 하는 거, 예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족이 없었습니다. 영적인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아가 병들고, 그래서 갈등하며 고독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여러분, 예수가 없는 자아, 이는 병든 자아라고 하는 거, 믿음이 없는 자아, 이는 병들어 있는 자아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혼과 육체가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어떤 현상이 나타나느냐? 방황하게 됩니다. 갈등이 생기고, 삭개오처럼 고독한 인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영과 혼과 육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영혼과 육체 관계에 있어서 조화를 이룰 때에 감사와 기쁨, 용서, 사랑, 이해의 삶, 성령의 9가지 열매의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조화가 깨지면 마음에 병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에 병이 들어올 때 그때부터 불평하고, 원망하고, 시기하고, 마귀가 좋아하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고, 그래서 마귀가 좋아하는 일에 심부름꾼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혼과 육체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감사 감격 속에서, 기쁨 속에서, 용서 속에서, 사랑 속에서 천국의 삶,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이루어가며 살아가는 삶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몸에 균형과 조화가 깨져보세요. 병이 생기고 맙니다. 건강하다는 것은 몸의 모든 기관이 조화가 잘 이루어졌다는 거 아닙니까? 마찬가지로 우리 영혼과 육체도 조화가 깨지면 자아가 병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과의 관계가 무너지고, 인생이 병들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자신과의 관계에서 실패하고 고통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인생은 끊임없이 갈등하며 선택하며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육적인 것을 따르는 나와 영적인 것을 따르는 나, 이때 어떤 자아가 이기느냐에 따라,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승리하기도 하고 실패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2007년 버지니아 공대 총격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은 재미교포 조승희 씨가 일으킨 사건으로, 그는 미국으로 이민 가서 동부지역의 명문대에 들어갔습니다. 표면적으로 보면 그래도 성공한 젊은이입니다. 하지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자아가 병들었습니다. 영혼과 육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동료들과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자기 안에만 갇혀 고독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결국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많은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병든 자아가 부른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하는 거, 그래서 우리는 영혼과 육체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회나 가정을 들여다보세요. 영혼과 육체의 조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을 통해서 그 가정이 불행하고, 그 사회가 혼란스러운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래서 불안하고 불행한 사건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여러분, 그래서 중요한 것은 영혼과 육체가 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때 감사하게 되고, 감격하면서 기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열매가 감사요, 기쁨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잘 믿으면 예수님의 성품이 삶 속에서 나타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성품이 나오지 않으니까 믿는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당하고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믿는다고 하면서도 영혼과 육체의 조화가 깨지니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혼과 육체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가?

첫째로, 자신의 죄인됨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의인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두가 죄인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인생의 주인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우리 죄와 허물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주로, 인생 주인으로 영접하라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 모든 죄를 씻어주시고, 우리를 하나님 자녀로 삼아 주실 뿐만 아니라 자녀의 권세도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야 영혼과 육체의 조화를 이루며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과 늘 동행해야 합니다. 동행이라는 것은 교제하라는 말입니다.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지는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은 엄청난 축복입니다. 이렇게 될 때 우리 영혼과 육체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건강한 자아, 건강한 인생은 내 힘으로 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내 힘으로 컨트롤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면 우리 영혼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셔야 영혼이 강건하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가 믿지 않는가는 우리 인생에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모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 영혼과 육이 조화를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육체가 건강하고 편안하게 사는 것뿐만 아니라 영혼도 잘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요한삼서 12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그러나 부자는 영혼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오직 육체의 즐거움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이런 부조화가 그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었다고 하는 거,

여러분, 영혼과 육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무리 지금 나를 위해 행복하게 산다 할지라도 그것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과거 때문에 지금 즐거워하거나, 과거가 지금 나를 책임져주지는 않습니다. 주님의 뜻에 조화를 이루고, 주님 인격과 조화를 이룬 인격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성품과 조화된 성품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너와 내가 조화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복있는 사람이 되려면 나와 너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혼자 있는 사람은 힘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혼자 있는 아담을 쓸쓸하게 보시고 하와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함께 있는 그들을 보며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사회적인 존재입니다. 주고받으며 더불어 사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그런 인생이 멋도 있고, 맛도 있다고 하는 거, 우리 인생이 멋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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