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2009.07.26. 주일낮예배 "믿음으로 계산하라"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9,017회 작성일 2011-12-0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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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7. 26. 주일낮예배
 요한복음 6 : 5-13 "믿음으로 계산하라"


몽골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님 간증인데, '소똥 십일조' 라는 재밌는 간증입니다. 몽골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릴 때였습니다. 헌금 시간이 됐는데 한 성도가 “선교사님, 아무거나 십일조 해도 됩니까?” 묻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받은 것은 십일조 드리면 되는 거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성도가 다음 주에 큰 자루 하나를 들고 왔습니다. 선교사님은 무언가 하고 자루를 풀어보았습니다. 소똥이었습니다.
몽골에서 소똥은 아주 귀하다고 합니다. 소똥을 벽에 바르면 난방효과가 탁월하고, 거기다가 마른 소똥은 땔감으로도 유용하다는 겁니다. 그래서 그곳 사람들은 시간만 나면 소똥을 주우러 다니고, 또 다른 물건을 주고 사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소똥 냄새가 교회를 진동하자, 선교사님은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소똥을 통해 축복해 주시옵소서."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 마을에 있는 모든 소들이 볼일을 볼 때는 그 성도 집 앞에 와서 보더라는 것입니다. 자고 일어나면 집 앞에 소똥이 계속해서 쌓였습니다. 그래서 그 성도는 겨우내 땔감비가 전혀 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은 소똥을 팔아 생활도 넉넉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성도 마음과 믿음을 기쁘게 받으신 것입니다.
본문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고도 남았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읽다 보면 희망을 주고 가능성을 주며 세상을 살아갈 때 어떤 처지에서도 길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희망을 주는, 모든 사람에게 복이 되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이나 되는 사람을 먹일 수 있었는가? 그리고 배불리 먹고 남은 것이 열 두 바구니나 되었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여러분에게 믿음이 되고 은혜가 되며 복이 되는 말씀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여러분 인생에도, 여러분 가정과 일터와 사업장에도 배불리 먹고 남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오병이어 축복이 나타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웃과 나라와 민족에 희망이 되는 교회와 가정,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본문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영적 교훈이 무엇인가?

첫째, 믿음 계산은 내 계산이 아닌 예수님 계산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시험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기회를 주시고, 축복하시려고, 그 축복과 사명을 감당하게 하시려고 시험하시는 것입니다. 이 시험에는 꼭 합격해야 합니다. 합격하는 비결은 믿음으로 계산하는 것이고, 합격하면 믿음의 일, 기적과 축복이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빌립을 시험하십니다.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5절 말씀입니다.
그런데 빌립은 이 시험에서 실격하고 맙니다. 예수님 말씀에 빌립은 믿음으로 계산해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라고 하셨으니, 된다고 고백하고, 떡이 어디 있는가 찾아나서야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어린아이 도시락을 찾아내야 했습니다.
그런데 빌립은 머리로 계산하기 시작합니다. 아니, 계산하기 이전에 이 일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벌써 믿음 게임은 끝난 것입니다.
그리고는 안 되는 이유를 계산합니다. 7절을 보세요.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합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이미 계산해 두고 계셨습니다. 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어떻게 하실지 아시고', 즉 예수님은 빌립이 어떻게 하는가 보시려고 이렇게 물으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은 당신이 하실 일을 미리 알고 계셨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은 이미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실 계획을 가지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아이 도시락을 알고 계셨습니다. 다만, 빌립에게 말씀하신 것은, 빌립이 어떻게 하는가 시험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 믿음의 시험에 합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예수님 계산법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라고 하셨으면 예수님께서 가지고 계신 계산이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 계산은 우리 계산과 다릅니다. 이사야 55장 8절에 하나님 생각은 우리 생각과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계산법이 무엇이냐? 믿음의 계산은 일반적인 계산하고는 셈하는 법이 다릅니다. 빌립이 했던 계산처럼 이백 데나리온이 부족한 그런 계산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계산은 부족한 계산이 아닙니다. 풍족한 계산입니다. 불가능한 계산이 아닙니다. 능치 못함이 없는 계산입니다. 대안이 없는 계산이 아닙니다. 이미 계획을 다 끝내신, 준비를 다 끝내신, 그래서 우리가 시험에 합격만 하면, 곧 "실시하라" 고 말씀하실 그런 계산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을 살아갈 때 예수님 계산법을 마음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내 것으로만 계산하면 빌립과 같이 초라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믿음의 계산법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아브라함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아들을 바치라고 하셨을 때, 이유를 묻거나, 못하겠다고 거역하지 않았습니다. 또 고민이 된다고 망설이지도 않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아들을 데리고 말씀하신 장소로 떠납니다. 하나님 뜻이 계시겠지 하면서 믿음의 계산으로 하나님께 인정받고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큰 약속과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요구하셨지만, 결코 이삭을 빼앗아 가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이삭과 함께 주셨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일입니다. 각 방송사에서 그 분 일대기를 보여 주었습니다. 그 중에서 방송사마다 빼놓지 않고 보여준 것이 현대에 입사하게 된 사건입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학생운동 경력으로 중앙정보부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력서를 넣는 데마다 거절을 당했습니다.
그러자 박정희 대통령에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자기 전력을 그대로 밝히고 학생운동 순수성과 충정을 말했습니다. 그리고나서 사회 진출을 막는 당국 처사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이 그 편지를 보고,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여러분, 된다고 하는 믿음을 막을 수 있는 거,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철권통치 하던 권력도 된다는 믿음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죽음도, 사탄도, '하나님 앞에서 된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내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데, 그래도 해야 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내 힘으로 안되는 데도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가 많습니다. 수학 공식처럼 명쾌한 해답이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 이럴 때는 특별한 계산법이 필요하다고 하는 거, 이 특별한 계산이 믿음의 계산입니다. 이 계산법을 만드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할렐루야!
여러분, 아무쪼록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내 계산이 아닌 믿음의 계산으로 믿음의 일을 일으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배불리 먹고도 12바구니가 남는 기적의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그러면 믿음 계산, 예수님 계산법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오병이어로 남자 장정 오천명을 배불리 먹이고 12바구니가 남는 예수님 계산법이 나옵니다. 3가지로 찾아봤습니다.

1) 믿음으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오병이어 기적은 어린아이의 헌신을 통해 일어났습니다. 어린아이가 가져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는 지극히 작은 것이었습니다. 어린아이 한 끼 도시락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것을 귀하게 보셨습니다. 그것을 크게 보셨습니다.
제자들이 보는 것과 예수님이 보시는 것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오병이어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먹을 수 있는 떡과 고기를 보셨던 것입니다.
여러분, 헌신은 고귀한 것입니다. 작지만 이것은 어린아이 전부였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헌신을 축복하십니다. 이런 헌신을 통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기적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가 어떻게 풍성한 축복을 받았습니까? 가루 반죽통과 기름병이 마르지 않는 복을 어떻게 받았느냐? 그가 가지고 있는 마지막 가루 한 웅큼과 기름을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위해 드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심고 거두는 법칙입니다.
여러분, 헌신은 기회입니다. 기적의 기회요, 축복의 기회입니다. 그래서 헌신의 기회가 찾아왔을 때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계산은 항상 심은 것보다 많이 거두게 하신다고 하는 거, 최소한 30배라고 하는 거,
여러분, 주님께 드릴 때 기적을 체험하고, 풍성한 축복을 경험하게 된다고 하는 거,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병이어는 어린아이 한끼 식사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 드려질 때 남자 장정만 오천명이 먹고도 열 두 바구니나 남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예수님이 축사하실 때 그것은 많은 사람을 먹이고 남기는 귀한 것이 되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이 예수님께 드려질 때, 귀하고 가치 있는 인생이 된다고 하는 거, 예수님께서 축복하시면 기적과 같은 인생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이 오병이어와 같이 작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문제는 그것이 예수님께 드려졌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보잘 것 없는 것일지라도 주님께 드려질 때 위대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축복하시면 많은 사람들을 풍요롭게 하는 기념비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시고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것을 주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시간도 재능도 경험도 물질도 여러분 꿈도 주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는 위대한 인생, 기적과 같은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가져 오라고 하실 때 순종했습니다. 무리로 하여금 떼를 지어 않게 하실 때 순종했습니다.
여러분, 모든 기적은 말씀에 대한 순종입니다. 신앙 본질은 순종입니다. 성경은 믿음과 순종을 동의어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들어가는 자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한 자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건축가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 행치 않는 자는 모래위에 집을 짓는 어리석은 건축가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 두 집은 서로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비바람이 몰아치고 홍수가 나면, 두 집이 얼마나 다른가 깨닫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사람은 인생의 비바람이 몰아치고 인생의 홍수가 몰려와도 견고히 신앙의 집을 지킵니다. 그러나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인생의 비바람이 몰아치고 홍수가 나면 믿음의 흔적을 찾을 수 없도록 무너져 내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하는 거,
순종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① 형식적인 순종입니다. 이 순종은 감정적인 흥분상태에서 일시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흥분이 가라앉으면 돌아서 버리는 것입니다. 이 순종은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주변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순종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바뀌면 곧 돌아서 버립니다. 중심으로는 순종하는 마음 없이 행하는 순종인 것입니다.
② 조건적인 순종입니다. 내게 유익하고 합당하다고 볼 때 하는 순종입니다. 내게 불리하거나 도움이 되지 않을 땐 돌아섭니다. 조건적인 순종은 순종해야 할 대상보다는 자기 자신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내가 좋으면 순종하고, 내게 이익이 되면 순종합니다. 그러나 이해타산이 맞지 않을 때 돌아서버린다고 하는 거,
③ 헌신적인 순종, 신앙적인 순종입니다. 이는 무조건적인 순종입니다. 내게 타당하거나 내게 유리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해야 할 대상이 중요하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대상이 순종할 대상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노아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120년 동안 방주를 만들었습니다. 마른하늘에 그것도 산꼭대기에...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습니다. 하지만 노아는 순종했고, 결국 자신과 가족이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믿음에 사람은 이해가 되어야만 순종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하는 것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행한 첫 번째 기적은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기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하인들에게 물을 길어 항아리에 채우라고 명하십니다. 그리고 항아리에 물을 채우자 예수님은 그물을 떠다 연회장에게 주라고 하십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명령입니다.
그러나 하인들이 예수님 말씀대로 순종합니다. 연회장은 맛을 보더니 최상품 포도주라며 신랑을 칭찬합니다.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연회장은 이 포도주가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했으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고 했습니다. 하인들 순종을 통해 기적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주님께서 하라 하시니 순종한 것입니다. 이런 순종이 헌신적 순종이라고 하는 거,
여러분, 순종하면 복을 받습니다. 순종하면 기적을 체험합니다. 순종은 축복을 가져오는 열쇠요, 축복에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말씀에 순종할 때, 말씀을 온전히 믿고 순종할 때 지금도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 축복이 따라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믿음으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나아만 장군이 나병에 걸렸습니다. 그는 엘리사에게 가면 병을 고침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엘리사를 찾아갑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종을 시켜 요단강 물에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합니다.
나아만은 기분이 상했습니다. 우선 엘리사의 무례에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리고 병을 고치는 방법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화를 내며 돌아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다행한 것은 종들이 그를 만류합니다. 이 보다 더 한 일인들 못하겠느냐는 겁니다. 이곳에 병 고치러 왔지 대접 받으러 왔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변에 좋은 사람 두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깨우쳐 주는 사람이 있다고 하는 거, 큰 복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쨌든 나아만은 내키지 않았지만 요단강에서 목욕을 합니다. 엘리사가 시킨 대로 일곱 번 목욕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몸이 어린아이 살같이 새로워졌습니다.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내 상식에 이해되지 않아도 순종하면 역사가 일어난다고 하는 거, 순종할 때 하나님을 체험합니다. 순종할 때 하나님 복이 임하고 하늘의 능력이 임합니다. 우리 문제는 지식이 없어서가 아니라 순종이 없어서 문제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오병이어는 축복에 대상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믿음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모두 어렵다고 하는 이때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하나님의 기적을 끌어내리는 축복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오천 명을 먹이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는 위대한 인생, 기적과 같은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믿음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본문 11절,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나눠주시고 물고기도 그렇게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
예수님께서 축사하셨다는 것은 감사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의 비결은 감사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무리 앞에서 지극히 적은 것,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들고 하나님 앞에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이는 현실을 초월해서 드리는 감사입니다. 모든 조건을 넘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할 수 없을 때도 믿음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 되어질 믿음의 역사를 보면서 드리는 감사입니다. 오병이어가 가져다 줄 축복을 보면서 미리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감동하셨습니다. 그래서 오병이어의 축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가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께 감사하면 그 감사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한다고 하는 거,
우리는 지금 인생 광야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되는 일이 없는 것 같고, 앞길이 칠흑같이 어두울 때도 있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생활고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그래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앞으로 역사하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비록 지금은 우리 모습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같지만 장차 위대하게 변화될 모습을 믿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은 감사기도로 사자굴에서 건짐받는 기적을 체험했습니다. 다니엘은 감사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기도하면 죽게 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상황이 아니라 상황을 보는 관점입니다. 다니엘은 영적인 시각을 가지고 상황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감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모든 사건을 하나님 시각, 하나님 관점으로 사건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 섭리 관점에서 사건을 보고, 모든 사건에서 하나님 손길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섭리는 언제나 어려움을 통해 위대한 일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감사를 통해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가 경험한 기적은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렇게 다니엘이 감사했을 때 그 감사는 큰 능력으로 나타났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의 사자를 동원했고, 다음에는 그를 대적하던 사람들을 순식간에 무너뜨렸습니다. 이방 땅 바벨론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드러냈습니다. 결론적으로 더 형통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다니엘이 감사할 때 불행이 끝났습니다. 감사할 때 형통이 연장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감사를 통해 기적을 창조하십니다. 다니엘이 경험한 것은 하나님 기적입니다. 사람 힘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 감사를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증거하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고 불평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한밤중에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렸습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지진으로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리고 간수들이 구원 받았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자유의 몸이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거듭난 성도는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는 하나님을 움직입니다. 감사는 우리 자신을 변화시킵니다. 감사하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감사는 환경을 변화시키고, 감사는 기적을 창조하는 원동력입니다. 그래서 감사하는 사람이 되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감사에 영성이 있기를 축원합니다. 감사와 불평은 내 ‘선택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다고 하는 거, 아무쪼록 믿음으로 감사하셔서 오병이어 축복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배불리 먹고 12광주리가 남는 기적의 인생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결론적으로 그러면 왜 예수님 방법으로 계산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 방법으로 계산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뭐든지 예수님 손에 가면 변화됩니다. 기적이 나타납니다. 오병이어가 풍성한 축복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모든 풍성함은 예수님 안에 있다고 하는 거,
예수님 안에 은혜와 진리가 풍성합니다. 예수님 안에 지식과 지혜가 풍성합니다. 예수님 안에 영광이 풍성합니다. 예수님 안에 물질이 풍성합니다. 예수님 안에 능력이 풍성합니다.
그래서 예수님 안에서 가난한 자가 부요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병든 자가 강건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죄인이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쓸모없는 자가 쓸모있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작은 자가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연약한 자가 강성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누구냐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와 함께 하는 분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냐 보다 우리가 누구 손안에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할 때 사인한 만년필은 지금 값으로 계산할 수 없다고 합니다. 똑같은 만년필이지만 누구 손에 있느냐, 누구에 의해 어떻게 쓰여졌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에 주님의 손길이 닿으면 인생 값이 달라집니다. 버려진 인생이 예수님을 만나면 삶의 능력이 달라집니다. 실패한 인생이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가 일어납니다. 실패한 인생이 예수님을 만나면 명품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 계산법에 따라 신앙생활, 교회생활해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때 오병이어 축복이 우리와 함께 한다고 하는 거, 오천명이 배불리 먹고도 12바구니가 남는 기적과 같은 인생이 된다고 하는 거,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에게 희망의 메시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미국 북서부 지역 산촌에 겨울이 왔습니다. 대부분 새들은 따뜻한 남쪽으로 날아갔습니다. 그런데 잠수새라고 하는 새가 이 바위에서 저 바위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모든 새가 떠난 그곳에서 이 새 만큼은 노래하며 날아다니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새는 갑자기 얼음같이 차가운 급류 속으로 들어가고, 그러더니 잠시 후에 건너편에 나타났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물에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은, 아주 온순한 새처럼 보이는데도 용맹스럽게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갑니다. 그 거센 급류 속으로 들어가고 돌 사이를 잠수하며 먹이를 구합니다. 물속에서 나오면 노래를 부릅니다. 잠수새 입에는 노래가 떠나지 않습니다. 다른 새는 따뜻한 곳을 향해 날아갔지만 이 잠수새 만은 추운 겨울에도 노래를 합니다.
여러분, 우리도 이 잠수새처럼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아무리 빈들과 같은 인생이라도, 우리 삶에 비바람이 불어오고, 인생길에 혹독한 겨울이 닥쳐온다 할지라도 이 잠수새처럼 언제나 감사하며 믿음으로 노래하며 살았으면 합니다. 조건을 초월해서, 상황을 초월해서 언제나 감사하며 노래하며 살자는 것입니다.
여러분, 어려운 형편과 처지,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환경을 만나든지 믿음으로 계산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에 눈으로 계산하고 해답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헌신도 하고, 믿음으로 순종도 하고, 믿음으로 감사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그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오병이어와 같은 인생이 오천명이 먹고도 열 두 바구니가 남는 축복된 인생으로 변화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런 기적과 축복이 여러분 인생과 가정, 일터, 사역가운데 넘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기념비를 세우는 포도원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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