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2009.06.28. 주일낮예배 "자유하게 하시는 하나님 "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7,877회 작성일 2011-12-08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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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6.28.주일낮예배
누가복음 9 : 57-62 "자유하게 하시는 하나님"

 
일본 사람 御大德近 씨가 쓴 <이기려면 버려라>는 책에 보면 "인간은 집착을 버린 만큼 강해진다"는 말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집착을 버려야 강하고 담대해지고, 따라서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자유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탄이 우리의 인격과 정신을 파괴시키고 멸망시키는 방법 중 하나가 우리로 하여금 어떤 사건에 집착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생각을 떼어버릴 수 없도록 달라붙어서 인격을 파괴시키고, 자유를 빼앗고 마는 것입니다.
몇 년 전 어느 은행 과장이 자살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는 실력도 있었고, 건강한 체구에 유도 6단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동료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듣고는 상심하다 노이로제까지 걸리게 되었다는 겁니다. 급기야는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몸의 병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그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던지, 어느 날 저녁 가족과 식사를 마친 후에 자살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이 무언가에 집착하게 되면, 결국 자기 인생뿐 아니라 가정에도, 그가 속한 기관에도 비극을 가져다준다고 하는 거, 기억하시고 주님 안에서 자유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집착으로부터, 매인 것으로부터 자유한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고, 비울 것은 비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신앙생활도 승리할 수 있고, 인생도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때로는 상식과 체면도 버려야 하고, 물욕과 지위, 과거도 버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너무 미워하거나 지나치게 사랑하는 것도 버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참된 자기를 찾게 되고 자유한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후회하고 실패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일찍 버리지 못하고 일찍 비우지 못해 그렇습니다. 버리고 비워야 할 때를 모르고 집착하며 살기 때문입니다. 움켜쥘 때가 있으면 펼 때도 있는 법입니다. 펴야 할 때 펴지 않으면 문제가 생깁니다. 만약에 우리가 숨을 들이마시기만 하고 내쉬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만약 우리 근육이 수축만 하고 이완은 못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전도서 3장 1절로 8절에 "범사에 기한이 있고 천하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라고 했습니다.
내려놓을 때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워야 할 때 비워야 합니다. 그래야 그 인생은 막힘없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건강한 신앙생활을 원합니다. 그럼에도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은 마음은 원하면서도 삶을 비우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오래했는데 자기를 비우지 못하면 행복한 신앙생활, 성공적인 교회생활 될 수가 없습니다. 비우는 생활을 잘 해야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고, 그때 비로소 자유가 뭔지, 신앙이 뭔지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를 비우는 삶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삶인가? 우리가 자유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말씀을 통해 큰 은혜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며 살자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내 생각, 내 방법, 내 열심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 알고 그것을 기쁨으로 행하고, 주님께 초점을 맞추는 것, 그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 57절로 58절에 “길 가실 때에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어디로 가시든지 나는 따르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고 말씀합니다. 이는 주님을 따르는 길은 감정도, 자기 영광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감정, 영광을 다 버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가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 중심을 두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이고 교회생활인 것입니다.
옛날 팽이치기를 해보셨을 겁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놀이라는 것이 대부분 팽이치기, 자치기, 구슬치기, 딱지치기 같은 것이었습니다. 팽이를 쳐본 분은 알겠지만 팽이는 아무나 잘 치는 게 아닙니다. 중심을 잘 잡아줘야 합니다. 중심을 잘 잡아 주려면, 팽이 가운데 심을 잘 심어야 합니다. 이게 제대로 되지 않으면, 무게 중심이 잘못되어 잘 돌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팽이가 제대로 돌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중심입니다. 인생도 팽이와 같습니다. 중심이 중요한 것입니다. 초점이 중요합니다. 렌즈를 이용해서 햇빛을 한 곳에 모으면 그곳에서 불이 붙고 연기가 올라옵니다. 초점이 정확하게 맞춰지니까 불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역도선수는 무거운 역기를 들어올릴 때, 온 몸에 힘을 한곳으로 모아서 엄청난 힘을 발휘합니다. 그때 더 큰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건강을 잃어보세요. 먼저 눈에 초점부터 흐려집니다. 건강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삶에서 초점을 잃게 되면 방탕하게 되고, 생각에 초점을 잃으면 횡설수설 합니다. 왜냐면 초점이 흐려져서 그런 것입니다. 치매가 무서운 것은 생각의 초점을 잃게 되어 지능이 떨어지고 기억이 희미해지기 때문 아닙니까? 이렇게 삶에 있어서 초점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초점을 잃으면 제일 먼저 신관이 흔들립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고, 그래서 믿음의 강도가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우상이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초점이 분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이 두 마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따라간 것입니다.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가 하면 믿음의 초점이 흐려졌거나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믿음의 초점을 잃으면 비집고 들어오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사탄의 공격이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허점을 노리고, 빈틈을 노립니다. 초점이 확고한 사람에게 사탄은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은 사탄이 다가온다 해도 넉넉하게 이깁니다. 축대가 무너지고 둑이 붕괴되고 집이 무너지는 것은 틈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고 하는 거,
이단도 신앙의 초점을 잃은 사람에게 다가옵니다. 그때 쉽게 유혹을 받습니다. 신앙에도 틈이 발생하면 반드시 사탄이 찾아오고 회의감이 찾아옵니다. 그 때는 마음에도 없던 온갖 잡념들이 생겨나고 유혹과 시험이 찾아오고 의심이 일어납니다. 이처럼 시험이나 회의감은 중심에서 이탈하거나 초점이 흐려질 때 찾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중심을 바로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중심을 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좌우로 흔들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는 이 초점이 분명해야 신앙생활에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을 보세요. 그는 예수를 알고 난 후 삶의 초점이 예수님께 집중되었습니다. 그의 관심과 생각 속에는 오직 예수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백합니다. “나는 이제부터 예수만 알기로 작정했다(고전2:2)”, “그동안 소중하게 여기던 모든 것을 미련 없이 버린다(빌3:8)”,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다(갈6:17)”, “나는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한다(빌1:20)”
얼마나 강력하고 담대한 모습입니까? 삶의 초점이 분명하면 이렇게 강하고 담대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높은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고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기쁘고 자유한 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초점을 맞춘 자에게 주어지는 자유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중심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그때 신앙생활도 제대로 할 수 있고, 거기에 신앙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때서 신앙인다운 높은 차원의 삶을 살 수 있다고 하는 거, 그때 자유케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인생을 살면서 왜 힘들어 하느냐? 모든 일을 내중심으로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낙심하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내가 주인되어 살아갑니다. 말씀에 순종한다고 하지만 전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가 않습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이 힘들고 지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내 인생을 살려고 하니까 힘든 것이지,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며 하나님이 내 주인이라는 믿음으로만 살아가면, 우리는 두려워할 이유도, 초조해할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명한 신앙고백과 신앙신조와 중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없으면 승리하는 신앙생활, 바른 교회생활을 할 수 없다고 하는 거, 아무쪼록 내 경험과 지식, 내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때 진정한 자유와 축복이 저와 여러분 가운데 넘치게 된다고 하는 거,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며 살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소중한 것일수록 자기 손으로 붙잡으려고 합니다. 재물도, 자녀도, 가정도, 모든 것을 붙잡고 놓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철저하게 하나님을 신뢰하면 하나님은 모든 것을 책임져주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며 살아야 합니다. 소중한 것일수록 더 맡겨야 그게 지켜진다고 하는 거,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본문 58절에서 주님은 “나는 머리 둘 곳이 없다.” 고 하셨습니다. 이는 제자의 삶을 살려면 삶의 모든 문제를 맡겨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일수록 하나님께 맡기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또한 59절에서 “나를 따르라” 고 하셨을 때, “제가 주님을 따르겠지만 먼저 아버지를 장사하고 오겠다” 고 대답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 고 하셨습니다. 이는 주님을 따르는 삶은 우선순위가 있다는 것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매일 삶 속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주님께 드리고, 주님과 동행하시기 바랍니다. 너무 분주해서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을 잃어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실로 나를 내려놓고, 온전히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성도는 어떤 일을 많이 하기보다는 우선순위를 잘 두는 창조적 시간 관리의 지혜가 필요하다고 하는 거,
김선실 전도사님이라고 있습니다. 이분은 지금 여의도 순복음교회 담임목사님 어머님이 되시는 분인데, 이분은 시부모를 모시는 며느리로, 4남 1녀 어머니로, 재봉틀을 판매하는 사업가로 바쁜 삶을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바쁜 중에도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을 가장 소중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제대로 전도하고 싶어서 신학교에 들어갔고,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초창기부터 헌신적으로 섬겼다고 합니다. 그렇게 바쁜 삶을 살았지만 자녀들은 모두 훌륭하게 자랐고, 믿음의 가정을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가운데서도 어떻게 자녀들이 그렇게 잘 성장했는가? ‘특별한 자녀교육법’ 이 뭐냐고 물었더니 “나는 어머니 역할을 잘 못했다. 사업하느라 새벽예배 드리고 학교에 보낼 뿐, 돌아오는 자녀들을 맞아주지는 못했다” 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분 마음에는 이 자녀들이 내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라는 확신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저는 엄마 자격이 없다’ 고 하며, 이 자녀들은 주님 자녀니 주님이 키우시고, 가르쳐 달라고 기도했고, 그냥 주님께 맡겼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기도하고 나면 그렇게 자유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마음에 든든한 은혜가 임하더라는 것입니다. 또한 아이들에게는 교회 잘 다니고 예배는 신령과 진정을 다해 드리라고 가르친 게 전부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소중한 것을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자녀도, 사업도, 재물도 맡기시기 바랍니다. 건강도, 가정도, 삶의 목표도 하나님 손에 맡기시기 바랍니다. 맡긴다는 것은 내가 일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일하게 하는 길이라고 하는 거,
또한 나를 속박하는 상처도, 자존심도, 실패도, 인생의 쓴 뿌리도 다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우리를 치유하시기 위해, 회복시켜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복된 삶을 살게 하시려고 우리가 받을 멸시와 고난, 찔림과 상함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심에도 우리의 모든 짐을 담당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55:22)” 할렐루야!
여러분, 참된 신앙인은 “어떤 상황이든, 하나님께 맡기겠다.” 고 믿고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실패를 당해도 하나님 일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하나님 일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자기를 비울 줄 아는 사람은 삶의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고 살아갑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님께 맡길 때 주님은 그 일을 가장 선하게 이루어가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인생의 어떤 문제든지, 어떤 짐이든지 주님 십자가 앞에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그때 치유의 복도, 회복의 복도 경험하게 된다고 하는 거, 그때 우리 영혼도, 우리 육신도, 우리 삶도 자유해질 수 있다고 하는 거,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셋째, 바르게 결단하고 믿음으로 행하며 살자는 것입니다.

자기를 비운다는 것은 분명한 결단력으로 그것을 실천하는데 있습니다. 비움의 영성은 잘 결단하고 그것을 믿음으로 행하는 삶의 능력입니다.
본문 61절로 62절에 “또 다른 사람이 이르되 주여 내가 주를 따르겠나이다 마는 나로 먼저 내 가족을 작별하게 하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고 말씀합니다.
이는 과거의 미련을 잘 떨쳐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사람은 과거에 잘못된 일과 상처도 버릴 수 있어야 합니다. 육적인 일과 잘못된 습관을 끊어버리는 실천이 있을 때 미래를 열어주시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성경은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 고 했습니다. 구습은 옛 생각, 옛 습관, 옛 태도를 말합니다. 이것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생각, 새로운 태도, 새로운 영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를 바꾼 사람들은 대부분 결단하고 행동하는 통찰력과 용기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도 잘 아는 얘기일 겁니다. 그는 지덕이 겸비하고 무술이 뛰어난 장수였지만, 젊어서부터 술을 잘 먹고 기생집을 잘 드나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이런 아들이 치국평천하를 할 수 없겠다 생각되자 김유신에게 주색을 삼가라고 눈물흘리며 부탁했다고 합니다. 김유신은 어머니 말씀을 깊이 명심하고 그 다음부터는 술집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전쟁터에 나가 승리하고 피곤한 몸을 말에 싣고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이 원체 영리한 말이라 이럴 때면 으레 술집에 가겠거니 하고 늘 가던 기생집으로 갔습니다. 말이 다 와서는 몸을 흔들기에 눈을 떠보니, 기생집 앞이었습니다. 그러자 김유신은 곧 칼을 빼 애지중지하던 말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성공하고 위대한 인물이 된 사람들은 모두 결심과 결단에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위대한 신앙의 사람, 큰 빛을 남긴 사람들은 모두 결단과 행동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거, 다니엘은 우상에게 바쳐진 술과 고기를 거부하고, 채소와 거친 음식을 먹음으로 신앙의 순결을 지켰습니다.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죄악의 낙을 거절했습니다. 이는 애굽 모든 명예와 권세와 물질을 다 버린다는 결단입니다. 모세가 그렇게 부귀영화를 버릴 수 있었던 것은,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신앙의 길에는 이런 결단과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 현실에서도 버려야 할 것, 포기해야 할 것, 부인해야 할 것이 우리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이것을 포기하지 않고, 거절하지 않고, 부인하지 않고는 주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맡기시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없습니다.
여러분, 세상에 있는 것,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그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걸림돌이 되고, 주님을 따르는 길에 방해가 된다면 그것은 우상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우상이 될 때 과감하게 버릴 수 있는 믿음의 용기, 주님을 따르는데 방해가 되는 것을 과감하게 버리는 결단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때 우리 영이 자유해지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신다고 하는 거,
일본에 야스토니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가 1960년대 다니던 회사 인사 과장이었을 때 일입니다. 일본에는 다양한 형태의 신사참배가 있습니다. 그가 다니던 회사는 죽은 직원을 신사에 놓고 참배하던 곳이었습니다. 그가 힘들었던 것은 인사 과장이기 때문에 그 행사를 직접 진행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참다못해 그는 “나 외에 다른 신(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려고 단호하게 신사참배를 거부했습니다. 그는 상부에 불려 다녀야 했고 여러 고난을 당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우상과 타협하지 않기 위해 직장생활 45년간 3번 좌천되었고 적자회사로 전출까지 당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신앙의 결단만큼은 절대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하나님은 그를 일본 최고기업으로 손꼽히는 가네보 제약회사 최고경영자로 역전시켜 주셨습니다. 그는 자기 출세나 명예보다 믿음 생활을 우선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는 그런 과정에서 체험한 주님을 주위 사람들에게 간증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변화되었고, 일본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의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믿음으로 결단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해 주십니다.
트루먼 대통령은 “대통령이 현명한 결정을 내리면 국가에 다행이고,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면 불행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전혀 결정을 내리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고 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주사위를 던질 때가 있습니다. 결정을 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주사위를 던지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 일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이 인생을 살면서 결단할 때는 과감하게 결단해야 합니다. 조직의 리더, 혹은 국가 지도자라면 그가 내린 결정은 전체 구성원 운명을 결정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고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결단을 통해 여러분 인생도, 가정도, 교회도 복을 받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 믿음의 사람은 어떤 결단과 행동이 있어야 되겠느냐?
① 생각에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부정적인 생각, 남을 미워하는 생각, 억울하고 분한 생각, 원망하는 생각을 잘라 버려야 합니다. 반대로 긍정적인 생각, 남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생각을 선택해야 합니다.
② 말에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원망, 불평하는 말, 자랑하는 말, 특히 남을 흉보는 비평하는 말을 잘라 버려야 합니다. 입술로 짓는 죄를 과감하게 버리고 끊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고, 세워주는 말을 해야 합니다.
③ 습관에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부부 싸움하는 습관, 술마시는 습관, 담배 피우는 습관도 믿음으로 끊어 버려야 합니다. 게으름과 나태한 습관도 끊고 생산적이고, 진취적인 생활습관을 결단해야 합니다.
④ 신앙생활에서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우상숭배, 교만하고 죄된 모든 삶,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모든 삶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영적으로 성장하고 교회생활 승리하기 위해 결단해야 합니다.
여러분, 잘못된 신앙생활, 우리 생각과 습관과 말에 있어서 잘못된 것을 자르고 끊어 버릴 수 있는 결단이 여러분에게 있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한번 마음먹으면 꼭 이루는 결단력과 각오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은 기회를 주시고, 큰일을 이루게 하십니다.
여러분, 자기를 비운다는 것은 손해가 아닙니다. 가장 큰 것을 얻는 길입니다. 주님의 사랑 안에서 자유와 영원한 행복과 주님 인도하심과 하늘의 복을 체험하는 길이 되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바른 결단과 행동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드리고, 영적인 자유함이 넘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맷오리 한 마리가 먼 나라를 향해 날아가다가 너무 배가 고프고 피곤했습니다. 그래서 무리와 떨어져 좀 쉬어가야지 하고는 어느 집 지붕에 내려앉았습니다. 지붕에서 내려다보니까 마당에 자기와 비슷한 집오리들이 고생도 안하고 편안히 먹고 잘 지내는 것입니다. 그 맷오리는 그 오리에 섞여 모이를 실컷 먹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지나다보니 살이 너무 쪄서 막상 날아가려고 해도 지붕 위까지밖에 날 수가 없는 겁니다. 결국 나는 것을 포기하고 집오리와 살다가 어느 날 잡혀 오리구이가 되고 말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은 대개 강한 집념으로 성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집착을 버려야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하고 어떤 일에 지나치게 집착하게 되면 거기에 노예가 되기 쉽고 그래서 자유하지 못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세상 사람과 달리 저 높은 곳, 천국을 향해 올라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주님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할 때 우리는 헛된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자유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개인에게 있어서 괴로움과 갈등이 떠나지 않고 있습니까? 아직까지 세상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걸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가정에 풍랑과 역경이 떠나지 않고 있습니까? 아직까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집착하는 것이 있기 때문인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만 바라보며 사시기 바랍니다.
그때 참 평안과 축복이 임하게 된다고 하는 거, 하나님께서 주시는 자유함을 누릴 수 있다고 하는 거, 아무쪼록 세상의 모든 유혹과 미련, 집착을 버리고 하늘의 복을 받아 누리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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