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서 우리를 도우라 (사도행전 16 : 6-10)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6,927회 작성일 2014-11-10 19:56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4.9.14.주일낮예배 와서 우리를 도우라 사도행전 16 : 6~-10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드로아에 가게 됐습니다. 그런데 밤중에 환상 중에 바다 건너 마게도냐 사람을 보게 됩니다. 그때 그 사람이 환상 중에 바울에게 말합니다.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 바울은 마게도냐 사람의 도와달라는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처럼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포도원에서 땅끝까지 선교에 대한 소원과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예배, 교육, 친교, 전도와 선교 등. 다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전도와 선교는 교회 존재 이유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우리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도, 저와 여러분이 존재하는 이유도, 그리고 우리 교회가 부흥해야 하는 이유도, 저와 여러분이 성공하고 복을 받아야 하는 이유도 포도원에서 땅끝까지 복음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포도원에서 땅끝까지 선교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하는 이 음성에 응답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1. 영혼사랑에 대한 열정이 있는 교회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 사람은 열정이 있는 사람입니다.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 가는 공동체는 열정이 있는 공동체입니다. 전도와 선교는 영혼을 사랑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전도자는 구원 확신과 함께 영혼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열정이 있어야 구원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고 했습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나라를 향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습니다. 자기 행복을 향한 열정이 아닙니다. 영혼을 향한 열정, 역사와 민족 그리고 하나님나라를 향한 열정입니다. 그 열정이 얼마나 뜨겁고 간절하던지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내 이웃, 내 나라, 내 민족, 땅끝을 생각만 해도 중심이 불붙는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열정이 있을 때 어떤 고난도, 어떤 핍박도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믿음은 열정이 있는 믿음입니다. 아무쪼록 영혼 사랑이 충만해서, 전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심령이 되셔서, 땅끝까지 구원의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2. 성령을 의지해서 기도하는 교회 전도는 영적인 일입니다. 전도는 육의 싸움이 아니라 영의 싸움입니다. 그래서 기도 없이 전도할 수 없고 기도 없이 선교할 수 없습니다. 전도는 마귀에게 빼앗긴 영혼을 도로 찾아오는 일입니다. 마귀는 쉬운 대상이 아닙니다. 한번 노예로 삼은 영혼을 쉽게 내줄 리가 없습니다. 갖은 방법으로 방해하고 저항합니다. 그래서 처음 교회 나오신 분들에게 풍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 없기 때문에 풍파가 많은 것이 아닙니다. 마귀가 자기에게서 빠져나가려는 영혼을 못살게 하기 때문에 풍파가 많은 것입니다. 이상한 핍박도 오고 이해할 수 없는 사건도 생깁니다. 이것은 사람이 준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배후에 마귀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 그럴수록 더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은 전도를 위해 더 강력한 기도를 요구하십니다. 기도가 아니고서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사도들은 전도하기 전에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주여 이제도 그들의 위협함을 굽어보시옵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소서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시옵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행4:29-30) 그러자 모든 사람이 성령 충만해서 담대히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가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났고,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 현장에 그리고 선교 현장에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길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충만해서 기도할 때 사탄이 결박되고, 복음의 문이 활짝 열리는 것입니다. 지금 중국은 가는 곳마다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1949년 공산화되기 전 중국 개신교는 70만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개신교인이 약 1억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선교사가 10만이라고 합니다. 이런 부흥이 어떻게 일어났느냐 하면, 온갖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성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들 신앙을 요약하면 강력한 기도와 주를 위한 자발적 고난입니다. 언제나 기도와 고난이 있는 곳에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께서 역사하십니다. 성령께서 감동을 주시고, 성령께서 전도할 문을 열어주시고, 성령께서 복음의 역사를 이루어 주십니다. 아무쪼록 전도는 육의 싸움이 아니라 영의 싸움이라고 하는 것을 기억하시고, 성령에 의지해서 기도하시고 전도에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3. 희생의 값을 지불하는 교회 희생 없이 전도할 수 없습니다. 수고 없이 전도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개신교는 가만히 앉아있는 종교가 아닙니다. 움직이며 활동해서 만들고, 걷고, 뛰고, 찾아가는 종교입니다. 그래서 교회 다니면 바빠지고, 자기만 위해 앉아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갈 곳이 많아져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야 하고, 아픈 사람도 찾아가야 하고,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도 찾아가야 하고, 희생도 해야 하고, 헌신도 해야 합니다. 그때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구원할 수 있습니다. 희생 없이는 생명이 살아나지 못합니다. 희생 없이는 지옥으로 가던 영혼이 천국으로 향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위해 희생하셨는데 어떻게 희생 없이 전도가 되겠습니까? 어떻게 희생과 헌신 없이 민족복음화, 땅끝 선교가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분명한 것은 헌신은 반드시 축복의 열매로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헌신할 때 거기에는 하나님의 기적과 축복이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6장에 보면 한 소년의 헌신으로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천명이 배불리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오천명을 사용해서 이 소년을 축복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과 계획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하면 희생하면 반드시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헌신해서 교회를 세우고, 선교사님들을 후원하고, 선교지에 영혼 구원을 위해 물질을 드리는 것은, 먼저 나를 축복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민족복음화를 위한 좋은 기회와 꼭 필요한 사람들을 붙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섬길 수 있다는 것이 은혜요 축복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씨앗이 되어 반드시 30배 60배 100배 복음의 열매가 맺혀질 것입니다. 희생과 헌신 없이 전도할 수 없고, 선교할 수 없습니다. 아무쪼록 여러분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하나님나라와 의가 땅끝까지 확장되는 역사가 있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선교는 축복입니다. 근세 선교역사에 보면 세계선교를 주도한 나라들은 모두 세계 최강이 되는 복을 받았습니다. 17세기에는 네덜란드, 18세기 독일, 19세기 영국, 20세기 미국 등. 이들 나라는 선교를 통해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이제 21세기는 우리 대한민국이, 우리 포도원교회가, 그리고 여러분 가정과 여러분이 그 축복의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링컨은 평소에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 살았기 때문에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졌다는 소리를 듣고 죽기를 원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복음사역, 선교사역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보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민족복음화와 세상을 향한 선교, 이는 구원받은 우리 그리스도인 삶의 목표요, 신앙 목표입니다. 우리는 복음으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선교적으로 생각하고, 선교적으로 대하고, 선교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무쪼록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지금 이 순간도 손짓하며 우리를 부르는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포도원에서 땅끝까지 쓰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체험적인 신앙 (창세기 22 : 11-14) 14.11.10 다음글신앙의 가정 (예레미야 35 : 18-19)14.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