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이사야 12 : 1-6)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7,370회 작성일 2013-07-09 11:36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3.6.16.주일낮예배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이사야 12 : 1-6 경기 중에 높이뛰기 경기가 있습니다. 선수들은 자기 키보다 훨씬 높은 장애물을 뛰어 넘습니다. 이렇게 높이 뛰어오를 수 있는 힘이 뭡니까? 그것은 장대를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장대를 의지해서 장애물을 거뜬히 뛰어 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절망적인 장벽이 우리를 가로막고 있어도 신앙 안에서 장대를 이용하면 거뜬히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가 되어 절망의 날을 살아갑니다. 시간이 지나도 해방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남은 자, 즉 어떤 환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고 견디는 자는 돌아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해방되지 않을 것 같은 고통의 현장 속에서 마침내 회복의 은혜와 구원의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긷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생명과 풍성함으로 큰 기쁨을 누리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포로 되게 하는 문제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런 환경가운데서도 신앙의 장대를 활용하면 넉넉하게 뛰어넘을 수 있고, 마침내는 승리하는 복과 고난 너머에 예비하신 생명과 풍성한 은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1. 믿음의 장대를 활용하라.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라”(2) 이는 하나님 외에는 다른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생활을 통해 구원자는 하나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가 되기 전 하나님보다 앗수르를 더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생활을 통해서 오직 하나님만이 그들의 구원자가 되심을 믿게 된 것입니다. 나의 힘이 되시고 노래와 구원이 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벨론 포로생활에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어떤 고난과 절망의 환경에 있다 할지라도, 믿음의 장대를 이용하면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의지하지 말고 우주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홍해 앞에서 전멸될 위기에 처했을 때, 믿음의 장대를 이용해서 승리했습니다. 다윗은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았지만, 믿음으로 고난을 극복하고 승리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베드로가 처형될 위기에서 믿음의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습니다. 인생의 고난이 있습니까? 우리에게는 믿음의 장대가 있습니다. 기독교 청년운동을 시작한 미국 롤링 박사는 아침에 잠에서 깨면 제일 먼저, ‘나는 믿습니다’를 세 번 반복했다고 합니다. 그의 마음속 잠재의식에까지 믿음으로 충만케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믿음을 외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장대를 붙잡고 절망을 뛰어넘으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을 절망과 위기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하나님이 되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어떤 시련과 환난 가운데 있다 할지라도, 절망의 장벽을 뚫고 나아갈 수 있도록 새로운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손으로 나를 대신해서 싸워주십니다. 그래서 내 가정과 나라와 민족을 구원해 주십니다. 아무쪼록 믿음의 장대를 이용해서 여호와 닛시의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2. 인내의 장대를 활용하라.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시련과 연단을 주실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바벨론의 포로가 되게 하신 이유가 뭡니까? 왜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난을 당하게 하셨습니까?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한 것에 대한 심판이요, 둘째는 그들이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난을 통해 하나님을 배반한 죄를 회개하고, 신앙을 회복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은 반드시 뜻이 있습니다. 사실 누구나 고난이 없었으면 합니다. 그러나 고난을 잘 통과하면 오히려 큰 은혜와 능력과 축복을 체험하고, 신앙과 인격 성숙의 기회가 됩니다. 때문에 고난이 눈앞에 있다고, 낙심하거나 절망해서는 안됩니다. 기도하며 하나님의 메시지를 찾아야 합니다. 이렇게 고난에는 뜻이 있음을 믿는 자는 그 고난 앞에서 인내하게 됩니다. 인내의 장대를 잡고 그 고난을 뛰어넘는 것입니다. 뛰어넘기만 하면 고난 너머에 준비된 하나님의 복을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30장 18절에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참을 줄 아는 사람, 고난과 환난 가운데서도 자기를 다듬는 겸손한 사람, 결코 포기하지 않고 다시금 일어나 자기 길을 가는 사람, 그런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내하는 자에게 축복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바벨론 포로생활 중에도 끝까지 인내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회복의 은혜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인생의 아픔으로 괴로운 분이 있습니까? 하나님은 인내의 장대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인내는 축복입니다. 이 축복의 장대를 붙잡고 뛰어넘으시기 바랍니다. 응답이 늦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때가 되면 반드시 응답해주십니다. 아무쪼록 인내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3. 희망의 장대를 활용하라. 희망은 믿는 사람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신앙적 품성입니다. 우리 앞에 어떤 시련과 장벽이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으로 인한 희망을 가지면 모든 것을 극복해나갈 수 있습니다. 본문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말씀입니다. 1절에 보면, ‘그 날에’ 라고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이 다시 회복되는 날을 말합니다. 포로생활이란 내일의 희망이 전혀 없는 암흑의 시간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모든 것이 끝난 것과 같은, 그런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록 지금은 절망 속에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희망의 장대를 붙잡고 지금의 고난을 뛰어넘으라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백성들에게 구원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4-6). 하나님께서 너희를 잊지 않으시고 구원과 회복을 주셨음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중요한 사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백성들에게 희망과 비전을 주는 일입니다. 예레미야 32장에 보면, 예레미야가 밭을 사는 장면이 나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바벨론 군대에 1년째 포위되어 있었고, 예레미야는 유다 궁중에 있는 시위대 뜰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밭을 산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처럼 보입니다. 바벨론 군대 포위로 경제적인 궁핍이 극에 달한 상황입니다. 거기다가 언제 예루살렘성이 함락되어 나라가 망할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예레미야는 밭을 사기로 결단합니다. 이것은 희망을 사는 행위였습니다. 내일 우리가 잡혀갈지라도 곧 돌아오게 될 것이고, 다시 일어나게 된다는 메시지였습니다. 예레미야는 도탄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상식을 뒤엎고 밭을 산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절망으로 고통당할 때, 담대하게 희망을 선포하고 보여주는 것이 우리가 취해야 할 신앙의 자세입니다. 가정에서 희망이 되고, 지역과 나라, 세계 가운데 어디를 가든지 희망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희망을 선포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명적 존재로 불러 주셨습니다. 아무쪼록, 어떤 환경에 있든지 희망의 장대를 붙잡고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죄로 인해 상처받고, 절망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구속하시고, 위로와 회복을 주시며, 선한 길로 인도하시는 희망의 주님을 선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땅에 희망의 은총이 넘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사람이 인생을 살면서 어려움을 겪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때마다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십자가 고난을 당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구원 능력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 사랑은 변하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바벨론과 같은 고통이 있습니까? 믿음의 장대, 인내의 장대, 희망의 장대를 붙잡고 넉넉하게 뛰어넘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문제 너머에 계신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구원의 복과 생명의 복, 삶의 풍성한 응답이 함께 함으로 축복의 기념비를 세우시기를 축원합니다.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내게 주신 은혜(갈라디아서 2 : 20-21) 13.07.09 다음글세상 속의 그리스도인 (창세기 6 : 5-12)13.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