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낮 설교
운명의 사람, 축복의 사람 (역대상 4 : 9-10)
김은미 댓글 0건 조회 7,980회 작성일 2012-08-27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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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8.19.주일낮예배

운명의 사람, 축복의 사람 역대상 4 : 9-10

동양 철학에서는 운명은 정해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든 일을 팔자소관으로 돌려버리는 일이 많습니다. 운명이나 팔자를 아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인간 운명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야곱은 둘째로 태어났지만 끈질긴 노력을 통해 장자권과 축복권을 받아내고 맙니다. 요셉이 야곱 열두 아들 중에서 주인공이 된 것도 역시 요셉의 신앙 노력을 통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운명을 신앙으로 개척해 나간 사람들입니다.

본문의 야베스가 그런 사람입니다. 야베스는 ‘수고, 고통’이라는 뜻입니다. 야베스는 불리한 환경에서 태어나 고통가운데 살아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그의 삶을 부정적으로 확정했지만, 본인이 운명을 바꿔나갑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의 삶이 고통스럽게 끝나지 않았다고 소개합니다. 오히려 형제들보다 귀중한 자라고 말합니다. 이는 역사와 가문 속에서 그가 차지한 비중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귀중하다’는 말은 무게 있는 인물, 그의 인격이나 행동이 영예롭고 존경받을 만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야베스가 어떻게 자기 운명을 극복하고 가장 귀중한 자가 되었는가? 운명을 뛰어 넘어 축복의 사람이 되는 비결이 무엇인가?

첫째, 야베스는 하나님은 복의 근원자가 되심을 믿었습니다.

야베스는 하나님의 복을 귀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어떻게 복을 베푸시는가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10)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분, 축복의 근원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야베스의 이름을 부르며 “너는 실패한 인생이다. 네 인생은 실패와 고통으로 가득할 것이다”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자기 이름을 부를 때마다 얼마나 낙심이 되고 좌절이 되었겠습니까? 하지만 야베스는 기도합니다. “저에게 복을 주시고, 그 위에 또 복을 부어 주옵소서.”

하나님은 우리가 이 땅에서 잘되고 복 있는 인생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신1:11,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현재보다 천 배나 많게 하시며 너희에게 허락하신 것과 같이 너희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요10:10,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원과 영원한 생명,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주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맹인 바디메오, 그는 평생 거지로, 맹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만나, 눈도 뜨고 예수님을 증거하는 가치 있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어부출신 베드로, 안드레, 요한, 야고보는 주님 제자들이요, 기독교를 확장시킨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핍박자 바울은 대 사도가 됩니다. 방탕하며 살던 어거스틴은 세계적인 신학자가 됩니다. 평양 깡패 김익두는 주님을 만난 후 대 부흥사가 됩니다. 예수 믿어 그들의 운명이 바뀐 것입니다.

부족한 것 때문에 고통가운데 있습니까? 야베스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는 운명 때문에 낙담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기대했습니다. 하나님은 축복의 근원이십니다.

둘째, 야베스는 하나님은 능력의 주가 되심을 믿었습니다.

야베스는 능력의 하나님을 믿었고, 그 믿음으로 환경을 극복했습니다. 실패한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환경을 탓합니다. 나는 부모를 잘못 만났기 때문에, 가난하기 때문에, 머리가 나쁘기 때문에... 이런 저런 핑계로 실패를 합리화합니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의 환경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습니다.

<상실과 고통 너머>라는 책이 있습니다. 고아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주제로 폴 트루니에가 쓴 책입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역사를 움직이고 영향을 끼친 대부분 지도자들이 고아거나 어린 시절을 고통 중에 보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들은 고통에 대해 창조적으로 반응한 사람들입니다.

야베스는 가난한 환경에서 어려서부터 고생하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불행한 환경에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상황에 합리화하지 않고 현실을 뛰어 넘었습니다. 능력의 하나님, 초월의 주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 믿음으로 미래를 개척해 나갔고, 결국 축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1994년 9월 미스 아메리카 선발대회에서 ‘화이트 스톤’이라는 여성이 미스 아메리카를 차지했습니다. 그녀는 청각 장애인입니다. 태어난 지 18개월 만에 귀머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미스 아메리카 대회 장기자랑 시간에 발레를 선택합니다. 발레는 음악을 들어야 하고 그에 맞춰 춤을 춰야 합니다. 그녀는 청각장애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발레를 사람들 앞에 보여 주었습니다. 마음속으로 박자를 맞춰가며 공연한 것입니다. 불행할 수도 있는 여인입니다. 자기 연민에 빠질 수도 있고, 평생 핸디캡을 가지고 부모를 원망하며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모든 것을 극복했습니다. 이 여인은 자기가 가지지 않은 것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가지고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에 집착했습니다. 자신의 핸디캡이 아니라 어떻게 장애를 극복해서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것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운명을 믿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 운명을 넘어서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믿음은 위대한 자원입니다. 아무쪼록 잃어버린 것, 없는 것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남아 있는 것, 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야베스와 같이 귀중한 인생,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야베스는 하나님은 기도하는 자에게 미래를 보장하시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야베스는 기도의 능력을 알았고, 기도로 자신의 미래를 열어갔습니다.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10)

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이는 영향력 있는 인생을 위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지극히 적은 것에도 감사하고 만족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왕이면 더 큰 영역에서, 더 넓은 곳에서, 더 많은 일을 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앙도 영적 영향력이 확장되어야 합니다.

②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주님의 손은 ‘하나님의 초월적인 힘과 절대적인 권세’를 의미합니다. 야베스는 그 주님의 손이 자신과 함께 하기를 구한 것입니다.

③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소서/ ‘환난’이란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게 만나는 일을 말합니다. 욥이 당한 환난은 하루아침에 자식을 잃는 환난이요, 재산을 잃고, 건강마저 잃는 환난이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산다고 몸부림을 쳐도, 갑자기 닥치는 불행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야베스는 환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근심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평강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한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한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야베스 믿음을 인정하시고 기도 제목마다 응답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기도를 통해 역사하십니다. 우리 미래는 기도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도해보라 내가 네 운명을 바꾸어주마’ 약속하셨습니다. 기도는 상황을 역전시킵니다. 삶을 바꿉니다. 가정을 바꾸고, 자녀를 바꾸고, 문제를 해결합니다. 야베스는 가장 불행한 운명을 타고 난 사람같이 보였지만,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축복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기도가 야베스의 미래를 만든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나는 바빠서 기도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도 ‘나는 바쁘기 때문에 더 기도한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야베스와 같이 “귀중한 인생”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간은 무한한 잠재력과 창조력과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일생동안 약 3-5%만 사용하고, 나머지는 사장시킨 채 인생을 끝낸다고 합니다. 야베스는 적극적인 신앙의 키를 가지고 주어진 운명을 바꿨습니다. 여러분도 야베스와 같이 운명에 도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주신 영적 에너지를 활용해서 새로운 운명의 도전자, 축복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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