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2.06. 주일낮예배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라"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052회 작성일 2011-12-09 22:57 가 본문내용 확대/축소 본문 2011.2.6.주일낮예배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라 사무엘상 4 : 5-11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사람은 잃어버려도 되는 것이 있는가 하면 잃어버려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지난 주간 우리는 명절로 보냈습니다. 명절은 기쁜 날입니다. 즐거운 날입니다. 그런데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을 잃어버려서 슬픈 날이 되지는 않았는가? 누가복음 2장에 보면 예수님이 열 두살 되던 해, 이스라엘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을 맞아 아버지 요셉과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한 주간 명절을 마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하룻길을 간 후에야 비로소 예수가 없어진 것을 알고, 백방으로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예수를 잃어버린 결과가 뭡니까? 첫째로, 육신의 고생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3일이나 찾느라 먹지도 자지도 못하고 물질과 시간을 허비하며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온 것입니다. 여러분, 실패하기는 쉬워도 회복하기는 참 어려운 것입니다. 격언에도 보면 "1분 동안에 실패한 것이 백년에 회복하기 어렵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두 번째, 정신적인 괴로움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2장 48절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를 보더라도, 예수 없는 마음이 얼마나 괴로웠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세상 모든 근심 걱정은 다 예수 없는 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다른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되돌아오면서 이 사람에게 묻고 저 사람에게 물어 가며 아들 예수를 찾았습니다. 그러니 부모로서 "무책임한 사람"이라고 사람들이 조롱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 잃은 성도는 맛 잃은 소금같이 모든 사람에게 밟혀지고 되고 마는 것입니다. 여러분, 명절을 보내면서 잃어버린 것 때문에 고통가운데 나온 성도는 없습니까? 본문에도 본질을 잃어버리고 고통 받고, 조롱당하는 장면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블레셋과 전쟁에서 패해 언약궤를 뺏기게 되었습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궤, 법궤라고도 하는데, 이는 그들 신앙생활의 본질이요 구심점이며, 삶의 뿌리고 생명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들은 항상 하나님의 법궤를 중심으로 생활을 했고 하나님은 또 그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헌신도 받으시고 그들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생명보다 귀한 법궤를 뺏기면서부터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게 되었고, 영적 지도자 엘리도 목이 부러져 죽고, 그의 며느리도 죽었습니다. 이 며느리는 죽으면서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이가봇이라 지었습니다. 이 이름의 의미가 뭐냐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것입니다. 즉 법궤를 잃어버림으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온 백성들은 이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큰 좌절감과 고통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마찬가지로 우리가 세상에 살면서 믿음을 잃어버리고 주님을 잃어버리면 블레셋, 즉 사탄에게 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인생과 가정, 교회, 민족이 될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불행은 믿음을 잃는데서 부터 시작되고 모든 시험은 예수를 버리는 데서부터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본질을, 생명을 잃어버리지 않는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잃어버린 하나님의 영광, 잃어버린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뭡니까?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을 찾았을 때 모든 것이 회복되었던 것처럼 여러분도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셔서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는 은혜가 있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첫째,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삶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왜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하고 하나님의 법궤를 빼앗기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자기들 멋대로 행동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 이후에 수많은 전쟁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전쟁 특징이 뭐냐면, 모든 전쟁에서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전쟁에 나갈까요, 말까요”, 먼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나가서 싸우라고 명령하시면, 이스라엘은 적의 숫자나 무기가 아무리 자기들보다 많고 우수해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이스라엘이 전쟁에 이기는 비결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었습니다. 병력 숫자도 아니고, 우수한 무기도, 유능한 사령관도 아니었습니다. 이는 출애굽 할 때나, 같은 시대인 사사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후 왕정시대에도 언제나 그렇게 싸웠습니다. 다윗을 보세요. 그는 나라와 자신에게 위기가 닥치자 가장 먼저 한 일이 하나님께 묻는 일이었습니다. 적군이 쳐들어왔다면 먼저 군대를 정비하거나 부하들을 불러 모아 전쟁을 위해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이것이 보통 사람들에게는 최우선이고 가장 급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그런 일을 접어두고 가장 먼저 하나님께 물은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 물어본다는 것은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해결하실 분은 내가 아니고, 군대가 아니고, 하나님이라는 믿음 때문에 나올 수 있는 행동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를 인정하시고 도와주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하나님 뜻을 묻고 나가 싸우면 100% 승리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사령관으로 모시고 하나님의 작전지시를 받아서 나갔기 때문에 항상 이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은 큰 전쟁을 하면서도 전혀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군대 사령관은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이제까지 이스라엘 군대가 철저하게 하나님을 사령관으로 모시고 하나님 작전지시를 받아서 싸웠는데,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첫 번째 전투에서 사천명이나 되는 엄청난 희생자를 내고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더 커졌다고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 전쟁에서 패했으면 이제는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아이성’에서 패했을 때 여호수아와 모든 장로들은 하루 종일 엎드려 하나님의 뜻을 구했습니다. 그리고는 응답을 받고 나가 두 번째 전투에서 크게 승리하지 않았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도 한 번 패했으면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뜻을 구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전혀 선조들의 교훈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들은 또다시 삼만명 전사자를 내고는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그들이 전쟁에 패한 원인이요, 법궤를 뺏긴 이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환경을 만나든지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도 날마다 블레셋이라는 사탄이 우리를 공격해옵니다. 우리 영적 싸움은 아주 광범위합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우리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그리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각 현장에서 영적 싸움은 그칠 날이 없습니다. 그러면 이 모든 분야, 모든 현장에서 승리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묻는 삶을 우선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대사> 라는 책이 있습니다. 2권이 다시 나왔는데, 이 책의 저자 김하중 씨의 별명은 ‘기도하는 대사’, 곧 ‘하나님께 묻는 대사’라고 합니다. 그는 대사로 봉직하면서 대소사를 하나님께 물었고, 그 대답대로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만 순종했다고 합니다. 그럴 때 사람이 보기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 일들이 이뤄지는 기적을 무수히 목격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정부를 대표한 대사이기도 했지만, 하나님나라 파송을 받은 ‘하나님의 대사’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사의 직분을 다니엘의 심령으로, 느헤미야의 심령으로 수행했다고 합니다. 다니엘이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처럼 세상 권력자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나라와 그 의만을 구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어떤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나라와 의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이 사건을 통해 이루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면 가고, 하나님께서 멈추라 하시면 멈추고... 그때 우리 영적인 가치가 상승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회복되는 축복의 역사가 일어나게 된다고 하는 것을 기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하나님께 돌이키는 삶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왜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패하고 법궤를 빼앗기게 되었습니까? 죄를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먼저 전쟁에서 실패했을 때,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 막힌 담이 무엇인지, 자신의 죄악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했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아간을 제거한 후에 아이성 공격에서 이긴 것처럼 그들 가운데 뿌리박고 있는 죄를 제하여야 했습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제거해야 할 죄악이 뭡니까? 당시 제사장 엘리 아들들이 하나님 없이 사는 죄를 범했고, 엘리는 이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 나머지 사명을 망각하고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제사를 멸시하고 하나님을 멸시한 것입니다. 그러니 백성들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들은 영적으로 윤리적으로 타락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상 7장 3절에 가보면, 사무엘이 온 백성을 미스바로 모이게 한 다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거하고 너희 마음을 여호와께로 향하여 그만을 섬기라 너희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건져내시리라” 이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의 패배가 영적인 부패 곧 신앙의 타락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제사장들의 불신앙과 타락을 따라서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고 또 다른 가나안족속 여러 가지 우상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제사를 지냈고 절기도 지킨다고 했습니다. 겉으로는 경건한 것 같았으나 신앙의 속모양은 회칠한 무덤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에게 ‘패배’라는 참혹한 경고와 심판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회개 방법이 뭡니까? 먼저 여호와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유일신임을 인정하고 마음속에 있는 또 다른 신을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목록 댓글목록 이전글2011.02.13. 주일낮예배 "영에 속한 자" 11.12.09 다음글2011.01.30. 주일낮예배 "내가 담을 뛰어넘나이다"11.12.09